Kim Kardashian West at the 2018 MTV Movie And TV Awards held at the Barker Hangar in Santa Monica, USA on June 16, 2018.

이미 마음을 정해서 이 글을 읽고 있든, 아니면 킴 카다시안을 위해 기꺼이 전쟁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어서 읽고 있든, 여기 와주셔서 기쁩니다. 이 글은 킴이 호감 가는지—혹은 그렇지 않은지—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애초에 왜 여성에게 ‘호감도’가 자격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취급되는지, 그리고 여성이 따뜻함과 친근함을 연기하기를 거부할 때 왜 그것이 그녀의 다른 모든 면을 무시해도 좋다는 공개 초대장처럼 여겨지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호감도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진정성이라고 부르죠. 혹은 재능, 혹은 자격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표현을 걷어내면 평가는 언제나 같습니다. 킴 카다시안은 스스로를 ‘호감 가기 쉽게’ 만들지 않았고, 대중의 시선을 받는 여성에게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잘못입니다.

호감도세 

여성에게 적용되는 호감도란, 좀처럼 단순히 상냥하다는 뜻에 그치지 않습니다.

남성에게 호감도는 선택 사항입니다. 그들은 뛰어나고, 까다롭고, 냉정하고, 오만하고, 무자비하거나, 사교적으로 피곤하게 하거나, 노골적으로 불쾌해도 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 사람과 그의 성취를 분리해서 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킴의 전 남편 카니예 웨스트는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와 저녁 식사를 하고 싶지는 않을 수 있어도, 그의 심각하게 문제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천재라고 부릅니다.

여성의 경우, 그 여성 자신이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으면 성취 자체가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충분히 따뜻한가요? 충분히 겸손한가요? 충분히 편안한 사람인가요? 자신의 성공을 지나치게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성공했나요? 권력욕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야심이 있나요? 이는 아메리카 페레라의 바비 독백이 다시 펼쳐지는 것과 같습니다.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해. 넌 너무 아름답고 똑똑한데, 네가 스스로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날 너무 힘들게 해…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하게 만들려고 나 자신과 모든 여성이 몸을 꼬아 맞추는 모습을 보는 데 너무 지쳤어. 그리고 여성을 상징할 뿐인 인형에게도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난 정말 모르겠어.” 

남성은 상냥하지 않아도 대단할 수 있습니다. 여성은 대단해지는 것조차 허락받기 전에 먼저 상냥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곤 합니다.

물론 남성에게도 그들만의 불가능한 기준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기준은 존재하며, 별도로 다룰 만한 대화입니다. 하지만 특히 호감도세는 거의 전적으로 여성에게서만 거둬들여집니다.

그러면 이제 킴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더러운 패에서 로열 플러시까지

킴의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현대사에서 가장 놀라운 서사 탈환의 사례 중 하나입니다. 네, 저는 그 영상을 말하는 겁니다. 그것은 그녀의 동의 없이, 굴욕적이고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완전히 그녀의 통제 밖에서 공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굴욕을 경력으로 바꿨습니다. 사람들은 그 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더 싫어하는 것은 그녀가 그 일에 대해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공개적으로 성적 대상화의 대상이 된 여성은 남은 대외적 삶 내내 자신이 그 이상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규칙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품위 있고, 정숙하며, 충분히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편견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모니카 르윈스키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을 방어할 수단 하나 없이 전 세계적 규모로 이름이 진흙탕에 끌려 들어갔습니다. 타블로이드, 정치인, 심야 토크쇼 진행자들은 한 젊은 여성에 대한 괴롭힘을 웃음거리로 다루며 그녀의 이야기를 걸러냈습니다.

하지만 킴에게는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망각 속으로 사라져 자신에게조차 속하지 않은 잘못을 평생 참회하는 대신, 서사를 되찾았습니다. 그녀를 무너뜨리기 위해 의도된 일을 사업으로 바꿨습니다. 그 모든 일을 그녀가 계획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사적인 영상이 공개된 여성은 많았지만 그중 단 한 명도 억만장자 대열로 뛰어오르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 사람들이 이토록 참을 수 없어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영상 자체가 아니라 수치심의 부재입니다. 비유적인 수녀복을 입고 사라지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적 굴욕을 겪고도 경고의 사례가 되는 방식으로 살아남는 여성보다, CEO가 되는 방식으로 살아남는 여성을 여전히 훨씬 더 불편해합니다.

에니어그램 타입 3에 적용되는 이중잣대 

서사를 되찾고 자신의 이미지를 통제한다는 이 모든 이야기는 아주 특정한 에니어그램 유형처럼 들립니다. 킴은 전형적인 타입 3입니다. 추진력이 강하고, 이미지를 의식하며, 전략적이고, 끊임없이 적응합니다. 

우연이 아니게도, 이 성격 유형은 적어도 고위 직책을 맡고 동료보다 더 많이 버는 의미에서 대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이제 우리가 타입 3 남성을 어떻게 말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마이클 조던이 좋은 예입니다.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 라스트 댄스는 대중에게 그의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는 냉정하고 무자비하며 통제적인 사람으로 비쳤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외면하는 대신 오히려 더 사랑했습니다. 심지어 위대함의 대가라며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기까지 했습니다. 

빌 클린턴도 있습니다. 그의 홍보팀은 수십 년간 그를 뛰어나고 공감 능력 있는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이미지를 관리했고, 모니카 르윈스키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꾼 불륜 스캔들 이후에도 그는 정치 원로로 추앙받고 재기의 아이콘으로 칭송받았습니다. 정말 기막힌 일입니다. 타이거 우즈 역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공개적인 방식으로 가족에게 굴욕을 안겼지만, 현존 최고의 골퍼라는 그의 유산은 한 번도 의심받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남자애들은 원래 그렇다는 식이니까요.

대중이 타입 3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팝의 어머니라 불리는 마돈나를 보세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여성 음악가입니다. 그런데 60년 동안 그녀는 무엇이라 불려왔을까요? 1991년에 그녀가 직접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차갑고 계산적이며 야심만만한 년으로만 봐요.” 영향력이 부인할 수 없는 전설이지만, 검증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사람들은 그녀가 성관계를 통해 명성을 얻었다고 농담하곤 했습니다. 당시 저는 그것을 이해하기에 너무 어렸습니다. 돌이켜보면 소름이 돋습니다. 여성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그런 방식이었을지도 모르는 구조에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방식과 재능, 평판은 거리낌 없이 추측의 대상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테일러 스위프트는 너무도 끈질기게 ‘계산적’이라는 말을 들어서, 그에 관한 앨범 전체를 만들었습니다—레퓨테이션입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의심받고, 저평가되며, 과대평가되었다는 판정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 여성은 어떤 아티스트도 이전에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습니다. 진정한 선구자이지만, 그녀에 관한 대화의 대부분은 그녀가 무엇을 구축했는지가 아니라 그 공로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집중됩니다. 

그리고 이제 킴이 있습니다. 그녀는 40억 달러가 넘는 가치로 평가되는 보정 속옷 회사를 세웠습니다.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전체 합격률이 약 20%인 캘리포니아 ‘베이비 바’ 법률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 이름조차 없던 시절에 인플루언서 경제를 만들어냈습니다. 어떤 측정 가능한 기준으로 보아도 그녀는 놀라운 사업가입니다. 그런데도 이 글을 읽으면서 여러분의 머릿속은 아마 이런 성취의 가치를 자동으로 의심할 것입니다. 그만큼 조건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업계에서 남성과 여성을 묘사하는 데 쓰는 어휘조차 다릅니다.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남성은 전략적입니다. 똑같이 하는 여성은 음모를 꾸미는 사람입니다. 그는 단호하고, 그녀는 권위적입니다. 그는 요구가 많고, 그녀는 까다롭습니다. 그는 설득력이 있고, 그녀는 조종적입니다. 그는 추진력이 있고, 그녀는 무자비합니다.

같은 특성입니다. 평가는 완전히 다릅니다. 유일한 변수는 성별입니다.

왜 우리는 여성이 호감 가는 사람이기를 바랄까요?

이런 현상이 아무 이유 없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기록된 역사의 대부분 동안, 호감도는 여성의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공동체가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여성은 명성, 결혼 가능성, 생계, 그리고 역사의 더 어두운 시기에는 화형당할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습니다. 여성에게 허용된 유일한 화폐는 타인에게 사랑받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의 지렛대였고, 그렇게 호감도는 미덕 자체와 동일시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만들어낸 조건이 사라진 지 한참 후에도 그 기준을 유지해 왔습니다. 여성은 이제 재산을 소유하고, 회사를 운영하고, 공직을 맡으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제국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그들이 그런 일을 하도록 허락할 만큼 우리가 그들을 좋아하는지 묻습니다.

상속된 기준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 기원을 넘어 살아남습니다. 왜 그런 기준을 만들었는지 잊은 한참 뒤에도 우리는 그것을 강요합니다.

그렇다면 킴에 대한 평가는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그녀에 대해 양가감정을 느낍니다. 그녀가 이룬 것을 존중합니다. 솔직히 그녀의 인격은 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은 조금 의심스럽게 느껴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모두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아니다.” 킴 카다시안이 모두에게 사랑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제게 그녀를 덜이 아니라 더 신뢰할 만하게 보이게 합니다. 전 세계적인 찬사는 대체로 누군가가 자신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모두 갈아냈다는 신호입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 어떤 종류의 ‘평가’를 내리는 것 자체가 핵심을 놓치는 일입니다. 물론 그녀는 호감이 가지 않을 수 있고, 실제로 그럴 만한 이유를 몇 가지 제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진짜 이야기는 킴이 호감을 얻기 쉬운 사람인지 아닌지가 아닙니다. 여성들이 대단해질 수 있도록 허용받기 전에 여전히 먼저 자신을 만만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뀌기 전까지, 이 질문은 그녀보다 우리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Milena Wisniewska

밀레나 제이 위스니에프스카는 아일랜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관계 건강 및 영성 분야 작가입니다.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보유했으며, 모든 일을 그만두고 전업 캐리 브래드쇼가 되기 전까지 기술 기업에서 고객 관리자로 일했습니다. 아직 자신의 유형을 확정하지 못한 ENXJ인 그녀는, 따뜻한 지혜가 필요할 때 찾게 되는 직설적이면서도 유쾌한 절친입니다. 또한 전업 서퍼이자 영화 애호가, 책벌레이며, 늘 수첩을 들고 무언가를 끄적이는 자칭 고뇌하는 예술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