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성장의 어두운 면: 치유가 ‘내’ 사람들을 잃게 만들 때
경제학에는 전환 비용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소비자가 한 제품이나 서비스에서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로 바꿀 때 발생하는 비용으로, 금전적 비용뿐 아니라 시간, 노력, 심리적 부담으로도 측정됩니다. 전환 비용은 본질적으로 장벽과 같습니다. 떠나는 데 드는 비용이 변화의 이점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객을 붙잡아 두는 것이죠.
이 점을 이해하고 나면, 같은 원리가 개인의 변화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제 변화에는 큰 대가가 따랐습니다. 상담과 치유를 시작하면서,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의 조건을 바꾸는 기제를 작동시켰죠. 솔직히 말하면, 바로 그 이유로 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참혹한 이별을 겪은 뒤였고, 직장, 우정, 가족을 비롯한 전반적인 관계에 몹시 불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전환 비용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관계를 그저 새롭게 업데이트하면 될 거라 생각했지, 개인적 성장이 관계 전체의 계약을 다시 협상하게 만들 것이며, 결국 때로는 상대방이 조건을 바꿀 의향이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전의 나는 ‘내 사람들’을 어떻게 골랐는가
실질적으로 제 삶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제게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던 이들이었습니다. 더 높은 지위, 더 큰 자신감, 혹은 제가 사람의 척도라고 정한 어떤 특성이든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었죠. 그들 곁에서 저는 그들이 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들이 입는 방식으로 옷을 입었습니다. 그런 친구들 중 한 명과 차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Nicki Minaj의 노래가 나오던 순간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저는 그 노래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녀가 “이 노래 너무 저질이야!”라고 말하는 바로 그때 볼륨을 높이려고 손을 뻗었죠. 하지만 볼륨을 높이는 대신 낮추고 그녀에게 동의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녀를 기쁘게 하려고 제 취향을 너무 쉽게 저버린 것이 민망합니다.
두 번째 부류는 제게 ‘더 적은’ 것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던 이들이었습니다. 훨씬 더 불편한 고백이지만, 저는 그들이나 그들의 사랑을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의 의견과 취향을 함부로 대하고 묵살했습니다. 언제나 제 방식대로 해야 했습니다. 어디서 저녁을 먹을지, 무엇을 들을지(참 아이러니하죠)까지요. 당시에는 그 불균형이 저만큼이나 그들에게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기에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누군가가 결정하고 이끌어 주면 안도하는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성격의 사람들이었습니다(적어도 제게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한 상황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전 남편이 된 사람과 제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었는데, 저는 모든 것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동안 그들은 집 안을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저는 샤워를 할 수 있도록 전 남편에게 식탁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물론 제가 분명하게 요청해야만 했던 일이었죠. 잠시 뒤 그는 욕실 문을 두드리며 샐러드를 어느 접시에 담아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제가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된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제가 ‘더 소중히 여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꼈던 무력감은, ‘덜 소중히 여긴’ 사람들을 통제함으로써 두 배로 보상했습니다. 즉, 그들을 복종하도록 강요한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무력한 졸, 다른 쪽에서는 폭군이었습니다. 서로 정반대인 두 역학은 같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완전한 정서적 소진이었죠.
애착 이론, 또는 내가 그런 사람들을 선택한 이유
시적으로 들리지는 않겠지만, 저는 운명이나 케미스트리 때문에 특정 유형의 사람들에게 끌린 것이 아니라 가족 역학 때문에 그랬습니다.
5년간 상담을 받고 Alain de Botton의 차분한 목소리를 수백 시간 들으며, 저는 우리가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이 아주 이른 시기에 형성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가족은 우리가 처음으로 사랑, 더 정확히는 애착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배우는 곳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아무리 다정하고 돌봐 주셨더라도, 사랑과 사랑을 받을 가능성에 관한 왜곡된 생각을 의도치 않게 심어 주셨을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비판적인 어머니와 다정하지만 경계가 전혀 없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한쪽에서는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제 삶에서 ‘나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다른 쪽에서는 애정을 당연하게 여기는 법을 배웠습니다(‘나보다 적은’ 사람들과). 사랑은 얻어 내야 하는 것이며, 아무 대가 없이 주어진다면 별로 가치가 없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도 당연합니다.
사랑을 연기하다
제가 자란 환경과 내면화한 메시지는, 감탄을 갈망하고 안전하다고 느끼기 위해 통제가 필요한 신경질적이고 이미지에 집착하는 성취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Enneagram의 용어로 말하면, 건강하지 못한 3번 유형이었죠.
건강하지 못한 3번 유형은 인정과 감탄을 얻기 위해 성격을 빠르게 바꿉니다. 우리는 계산적이고, 지배적이며, 냉혹할 수 있습니다. 저는 셀 수 없이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평가가 몹시 상처가 됩니다. 외부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사랑받고 싶다는 절박한 욕구가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Enneagram에서 각 유형은 사랑과 관심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처음 경험한 특정한 어린 시절의 상처와 연결됩니다. 3번 유형에게 그 상처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니라 주로 성취한 것 때문에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감각입니다. 이 전제에서 보면 제 관계 패턴은 거의 민망할 정도로 논리적입니다. 인정이 얻어 낸 것이기에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향해 ‘윗사람을 관리하듯’ 에너지를 쏟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저에게 매달리는 사람들을 무시한 것도 당연했습니다. 그들의 애정은 너무 쉽게 얻어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따라서 별로 가치가 없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저는 거의 30년 동안 그런 구조 속에서 살았습니다. 좌절, 비교, 판단, 불만족의 반복이었죠. 제가 당연하게 여긴 사람들이 제 각본을 따르지 않으면 원망했고, 또 그들의 수동성 때문에 다시 원망했습니다. 다른 관계 역학에서는 타인이 원하는 모습이 정확히 되지 못하는 제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사람들이 제가 어떤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지 추측하려 했고, 제 연기가 얼마나 잘 먹히는지에 따라 기분이 오르내렸습니다.
사실 저는 누구와 함께 있어도 편히 쉴 수 없었습니다. 제 자신으로 존재하는 법도, 제가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제 자아감 전체는 비교를 기반으로 세워져 있었습니다. 나는 이 여성보다 나은가, 못한가? 더 예쁜가? 더 인기 있는가? 일을 더 잘하는가? 그리고 그 답에 따라 누가 어느 집단에 속하는지 정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하나씩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가슴 아픈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건강하고 균형 잡힌 관계를 만드는 법을 전혀 몰랐습니다. 정말 하나도요.
치유가 실제로 내 친구 관계에 가져온 변화
치유 여정의 초기 단계에서 제 친구 관계가 줄어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강한 바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엄청난 축소 표현이죠.
요즘은 모두가 자기계발에 집착하지만, 소셜 미디어를 통해 깔끔하게 포장되어 우리에게 제공되는 이야기들은 ‘치유’라는 듣기 좋은 말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에 대해 준비시켜 주지 않습니다. 경계를 세우고, 성장하며 더 진정성 있게 사는 것은 상황을 더 좋게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이 에세이의 처음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관계를 그저 업데이트하면 모두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좀처럼 그렇지 않습니다. 관계는 두 사람 사이의 역학이라는 사실을 잊습니다. 한쪽을 바꾸면 다른 쪽에 압력이 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준비되지 않았거나 원하지 않는다면, 붕괴는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제가 거절하기 시작하고, 상호성을 요구하며, 예전에는 묵묵히 참아 넘겼던 행동을 거부하자, 저는 곧 그 관계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 한 명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마 이전에도 백 번쯤 했을 법한 날카로운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자리에서 그 말이 상처였고 그런 대우를 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다시는 제게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거의 20년간의 우정 끝에, 저는 그저 그녀의 삶에서 지워졌습니다.
또 다른 친구, 제가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여겼던 사람은 제가 필요를 드러내기 시작하자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제가 가장 좋은 상태에서 외출을 계획하고 휴가를 준비할 때는 전적으로 함께했습니다. 그런 버전의 저와는 언제나 잘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더 관여해 달라고, 제 짐을 조금 덜어 달라고, 이번만큼은 우리가 볼 영화를 정해 달라고 부탁하는 순간, 그것은 귀찮은 일이 되었습니다.
이것도 짜증 나는 일이었지만, 우정을 끊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제가 정서적으로 그녀를 필요로 했을 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수년 동안 그녀의 고통과 좌절을 견뎌 주던 사람은 저였지만, 제가 이별 후 무너졌을 때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 순간은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그녀는 집에 와서 Oreos 한 봉지(참고로 저는 그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를 가져왔고, 한 시간 머물다 떠났습니다. 그 후 한 달이 지나서야 다시 만났습니다. 저는 그녀가 필요했습니다. 의례적인 방문과 간식이 아니라, 몸소 제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그녀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녀는 그럴 수 있었습니다. 저라면 두말할 것 없이 그녀를 위해 그렇게 했을 겁니다. 아니, 저는 그녀를 위해 해 왔습니다. 하지만 제 날것 그대로의 혼란스러운 감정은 그녀에게 너무 버거웠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은 다른 사람들과도 벌어졌습니다. 몇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저는 가장 가까운 친구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이제 내가 보는 빛
그렇다면 이 모든 일에서 얻은 교훈은 무엇일까요? 결국 그 상실의 고통은 제 오래된 애착 패턴을 벗겨 내고, 다르게 선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제가 배운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상실이 있는 곳에는 얻음도 있다. 제 삶을 떠난 모든 사람은 더 잘 맞는 새로운 누군가를 위한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지인들은 서서히 친구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생일 축하 메시지만 주고받던 대학 친구는 이제 일 년에 몇 차례 만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때 재미없다고 치부했던 동료는 제 테니스 파트너가 되었고, 우리는 대안 영화를 함께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 거절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은 제가 제 자신을 거절하는지 여부입니다. 관계는 생겼다가 사라질 것이고, 처음에는 멋져 보였던 사람들 중 일부는 시간이 지나며 맞지 않는 사람임이 드러날 것입니다. 어떤 관계에서든 제 역할은 가장 진실하고 거리낌 없는 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처나 버림받음이 닥치더라도, 적어도 제가 제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요.
- 내 에너지는 소중하다. 그것을 짓밟을 많은 사람에게 흩뿌리기보다, 진정으로 저와 잘 맞는 몇 사람에게 투자하는 편이 낫습니다. 이제 저는 가장 오래된 상처를 건드리는 사람들과 얽히는 대가를 압니다. 요즘 저는 Beyoncé가 말하듯 ‘사랑에 더 인색해졌습니다’. 애정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제 자원을 이전보다 훨씬 더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다르게 선택합니다. 사람들 곁에서 제가 어떻게 느끼는지, 연기하고 싶은 충동이나 가면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때를 더 주의 깊게 살핍니다. 반대로 누군가가 제 에너지에 지나치게 의지하기 시작하는 때도 살핍니다. 그런 순간에는 그저 경계를 세우거나 거리를 둡니다. 저는 이미지보다 진정성을 선택합니다. 평범해지는 것, 심지어 지루해지는 것도 허락합니다. 마음속으로 되뇝니다. “Milena, 사랑받기 위해 특별할 필요는 없어.” 그러면서 내 사람들이 나를 찾아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3번 유형의 치유 경로인 듯합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억지로 일으키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내려놓고 받고 그저 존재하도록 스스로를 허락합니다.
밀레나 제이 위스니에프스카는 아일랜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관계 건강 및 영성 분야 작가입니다.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보유했으며, 모든 일을 그만두고 전업 캐리 브래드쇼가 되기 전까지 기술 기업에서 고객 관리자로 일했습니다. 아직 자신의 유형을 확정하지 못한 ENXJ인 그녀는, 따뜻한 지혜가 필요할 때 찾게 되는 직설적이면서도 유쾌한 절친입니다. 또한 전업 서퍼이자 영화 애호가, 책벌레이며, 늘 수첩을 들고 무언가를 끄적이는 자칭 고뇌하는 예술가이기도 합니다.